목숨 앗아간 공포의 버팀대
흑막이 지보공 설치 중 버팀대에 맞음
흙막이 작업이 한창인 아파트 재건축 공사현장 이른 아침부터 작업이 재개된 아파트 재건축 공사현장. 이곳에 일용직으로 고용된 김 씨와 정 씨, 굴삭기 운전사 박 씨도 손길을 서두르고 있다. 이날 예정된 작업은 102동 배면에 흙막이 지보공을 설치하는 일이었다. 굴착면에 경사 버팀대를 놓고 미리 시공된 지지부에 고정시키는 작업이다. “오늘 중에 버팀대 설치는 마무리합시다. 이걸로만 이틀을 꼬박 잡아먹게 생겼으니 원…, 자자. 서두르자고요!” 버팀부재가공작업에 시간을 많이 들인 탓에 정작 버팀대 설치가 늦어지자 현장소장은 작업자들을 재촉했다. “어휴. 서두르기만 하면 장땡인가. 제대로 작업하는 게 더 중요하지.” 김 씨는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그 말을 들은 정 씨와 박 씨는 머쓱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와이어로프 해체작업. 갈고리 없이 가능할까? 세 사람은 각자 작업위치로 이동했다. 가장 먼저 박 씨가 굴삭기를 이용해 버팀대를 굴착면으로 옮겼다. 김 씨는 굴착면 위에서, 정 씨는 아래에서 대기하다가 버팀대 상하단의 위치를 알맞게 조정했다. 자리를 잡은 버팀대가 움직이지 않도록 지지부에 용접하는 것은 뒤따라오는 작업자들의 몫이다. “오른쪽으로 조금만 더요. 네. 좋습니다.” 세 사람의 호흡이 잘맞아서인지 버팀대는 금세 자리를 찾았다. 이제 굴삭기 붐 끝단과 버팀대를 연결하는 와이어로프를 풀고, 다음 버팀대에 연결할 차례였다. 박 씨는 굴삭기 붐의 위치를 낮춰서 와이어로프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버팀대 하단으로 와이어로프가 흘러내리면 경사로 아래에 있는 정 씨가 그것을 해체하면 된다. 그런데 와이어로프가 조금 내려오는가 싶더니 버팀대 중간에 딱 걸려버린 게 아닌가. “갈고리가 없는데 어쩌죠?” 정 씨의 위침에 굴삭기 운전석에 앉아있는 박 씨는 손을 들어 괜찮다는 표시를 했다. 박 씨가 굴삭기 붐을 한두 번 튕기듯 움직이자 이내 와이어로프가 흘러내렸다. 정 씨는 박 씨의 뛰어난 운전실력에 내심 감탄했다. '작업계획서에는 와이어로프를 갈고리로 내리라고 나와 있던데… 굴삭기가 대신하니까 훨씬 편하네.' 순식간에 김 씨에게 날아든 버팀대 작업은 순조로운 듯했다. 박 씨와 정 씨는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나겠다며 콧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김 씨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버팀대에 걸린 와이어로프를 내리기 위해 박 씨가 붐을 움직일 때 버팀대의 상단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걸 봤기 때문이다. 버팀대의 길이는 무려 12m. 거대한 버팀대가 순식간에 쏠리기라도 하면 피할 재간이 없었다. 8m 높이의 경사로에서 작업 중인 김 씨가 피할 곳도 마땅치 않다. '버팀대를 지지부에 고정시킨 다음에 와이어로프를 풀면 안 위험할 텐데' 하지만 이는 김 씨의 생각에 그치고 말았다. 작업순서를 바꾸면 와이어로프를 풀기 전까지 굴삭기를 사용할수 없어 작업속도가 느려질 게 뻔했다. 일과를 재촉한 현장소장의 얼굴이 떠오른 작업자들은 마음이 급했다. 그런 김 씨의 불안한 마음을 알 리가 없는 박 씨. 또 다시 와이어로프가 버팀대에 걸리자 아까처럼 굴삭기 붐을 튕기듯 조작하려 했다. 그 순간이었다. 박 씨는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생각보다 붐을 높이 조정한 것이다. 굴삭기로부터 당기는 힘을 강하게 받은 버팀대는 균형을 잃고 기우뚱했고, 왼쪽으로 쏠린 버팀대 상단이 김 씨에게 날아들어 가슴을 그대로 강타했다. 김 씨는 급히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심한 출혈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등록된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