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05월 22일 경기 남양주시 지금동 현대힐스테이트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높이 55m, 가로 80m의 18t(옮길 수 있는 최대 무게) 크레인 윗부분이 부러지면서 근로자 3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에 앞서 지난달 1일 경남 거제시 삼성중공업 선박 건조 현장에서도 타워크레인 사고가 일어나 근로자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타워크레인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부실한 타워크레인 수입과 검사 체계, 건설업체와 근로자의 작업관리와 안전조치 미흡을 잦은 사고 원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남양주 사고 5일 전에도 문제 발생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이후 현재까지 타워크레인으로 인한 중대 재해는 23건(사망자 31명) 발생했다. 중대 재해란 1명 이상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2명 이상 중상자 또는 10명 이상 부상자가 동시에 발생한 재해를 뜻한다. 원인별로는 작업관리 미흡 11건, 안전조치 미흡 6건, 기계 결함 6건 등이다. 이 중 타워크레인을 설치·해체·인상하는 작업과 관련된 사고가 전체의 약 절반인 11건이었다. 남양주 타워크레인 사고도 타워크레인 키를 높이는 인상작업(텔레스코핑) 도중 발생했다. 타워크레인 기둥은 3~5m 높이의 마스트를 여러 개 쌓아 올린 것이다. 공사 중인 아파트나 빌딩에서 작업장 높이가 올라가면 타워크레인 높이도 함께 올리는 인상작업을 하는데, 기존 기둥 위에 추가로 마스트를 쌓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타워크레인 상단에는 마스트를 끼우는 틀인 텔레스코픽 케이지가 있는데, 이를 유압장치로 끌어올린 뒤 공간을 만들고 그 사이에 새 마스트를 끼워 넣어 고정한다(그래픽 참조). 남양주 사고 당시 텔레스코픽 케이지를 올릴 때 기존 기둥과 유압장치를 고정하는 부품이 부러졌는데, 경찰 조사 결과 사고 5일 전 인상작업을 할 때도 여기에 사용되는 부품이 부러진 것으로 확인됐다. 타워크레인 대여업체인 남산공영은 국내 공업사에서 새 부품을 제작해 22일 가져왔으나 부품 크기가 맞지 않아 일부를 깎아낸 후 교체했고 이후 작업을 하다 사고가 일어났다. 남산공영 관계자는 "제조사에서 직접 부품을 구할 수 없어 국내에서 제작했다"고 말했다. 이 크레인은 스페인 코만사(Comansa)가 2008년 제작한 모델(21LC550)로, 홍콩과 싱가포르를 거쳐 2014년 우리나라에 수입됐다.
"타워크레인 연식 사기 잦아" 현재 우리나라 건설 현장에는 약 5800대의 타워크레인이 있다. 이 중 50~70%가 외국산으로 추정되고 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2010년 이후 건설 붐이 일면서 타워크레인 수요가 급증했고 수입도 함께 늘었다고 한다. 수입 크레인 가격이 국산 크레인보다 20%에서 최대 50%까지 싸기 때문이다. 주로 중국이나 싱가포르에서 사용한 중고 크레인이 많이 수입된다고 한다. 크레인 업계 관계자 김모씨는 "싱가포르의 경우 제작된 지 14년이 넘은 크레인은 검사를 철저히 하는 등 관리 감독이 엄격한데, 이 때문에 중고 시장에 나오는 크레인이 꽤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외국산의 경우 생산 연도를 속이기 쉽다는 점이다. 타워크레인을 수입할 때 국토교통부에 신고하는데, 수입업자는 제작사가 만든 증명서를 제출할 의무가 없다. 건설기계 등록 신청을 할 때도 '수입 또는 제작일자'란에 업체가 알아서 써 넣으면 된다. 서류상 제작일자를 속인 뒤 실제 타워크레인 검사를 받다가 적발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수많은 국가에서 만든 다양한 모델의 타워크레인이 수입되고 생산업체가 도산하기도 하는 등 현실적으로 업체에서 제작증명서를 구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해 제작증명서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 크레인 업계 관계자는 "연식 사기는 수입 크레인뿐만 아니라 국산 크레인에도 일어났던 일"이라고 말했다. 타워크레인은 원래 유해위험 기계기구로 분류돼 고용노동부 관리 감독을 받았는데, 2008년 건설기계로 분류되면서 감독 기관이 국토교통부로 넘어갔다. 이 관계자는 "이때 모든 크레인을 새로 건설기계로 등록하는 과정에서 업자들이 제작 연도를 속이는 사례가 빈번했다"고 말했다. 타워크레인 불합격률 한 자릿수 타워크레인 기사 이모(41)씨는 "타워크레인 안전 검사를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이씨는 "1995년 제작된 크레인을 조종한 적이 있는데 녹이 심하게 슬었고 하중을 받는 부위에 땜질 처방을 했는데도 검사에서 불합격되지 않았다"고 했다. 현재 타워크레인 안전 검사는 국토교통부에서 위탁받은 한국승강기안전공단, 재단법인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 사단법인 대한산업안전협회, 사단법인 한국안전기술협회, 주식회사 한국산업안전 등 5개 기관 또는 업체가 실시하고 있다. 타워크레인을 건설 현장에 설치했을 때나 설치한 지 6개월 이내에 5개 기관 중 한 곳에서 조사를 받아야 한다. 검사원은 타워크레인 전체를 돌아다니며 눈으로 훑고, 제대로 작동하는지 여부를 확인한 다음 적합, 권고, 부적합 판정을 내린다. 권고의 경우 크레인 운용을 하면서 시정 조치된 부분을 사진으로 찍어 검사기관에 보내면 되지만, 심각한 결함으로 판단돼 부적합 판정을 받게 되면 이를 시정할 때까지 작동해선 안 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부적합 판정 비율은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이 28%이고 나머지 기관은 대부분 한 자릿수 초반대"라고 밝혔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0%에 가깝거나 2%대를 기록하는 기관도 있다고 한다. 부적합 판정 비율이 높은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의 우리나라 타워크레인 검사 비율은 약 3%이며, 나머지 4곳에서 전체 타워 크레인의 97%를 검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설업계에선 건설사나 크레인 대여업체와 검사 기관 사이의 유착 의혹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남양주 사고 크레인의 경우에도 사고 당일 오전 대한산업안전협회에서 정기 안전 검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안전 검사 후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 대한산업안전협회 관계자는 "사고가 일어난 텔레스코픽 케이지는 법적으로 육안으로만 검사하면 된다"며 "그 전에 인상작업을 하다 부품이 부러졌는지 여부는 기록도 없고 업체에서 알려주지도 않았다"고 했다. 모 타워크레인 검사 기관 관계자는 "타워크레인 끝까지 올라가서 목숨 걸고 검사하는데 검사 비용이 8만5000원에서 9만1000원"이라며 "검사 비용을 현실화하지 않아 부실 검사로 이어지는 면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타워크레인 정비기사 최모(48·경력 18년)씨는 "타워크레인 검사 기관 신뢰도를 높이려면 정기 검사에 눈으로 확인 안 되는 균열을 확인할 수 있는 비파괴 검사를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업관리·안전조치 미비도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과 관계자는 "건설업체와 타워크레인 대여업체, 근로자들이 작업관리와 안전조치를 제대로 안 하는 게 사고의 주요 원인"이라고 말했다. 안전대 설치 미비, 작업 감시자 부족 또는 미배치, 조작 미흡 등으로 대형 크레인 사고가 빈번하다는 얘기다. 지난달 1일 경남 거제시 삼성중공업 선박 건조 현장에서 일어난 사고의 경우 'Π' 모양으로 생긴 800t급 골리앗 크레인과 32t급 타워크레인이 충돌해 31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크레인 운전수와 신호수 간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게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타워크레인 업계 관계자 최모씨는 "타워크레인 수요는 많고 공급은 부족하다 보니 안전보다는 작업 속도에 더 민감한 게 사실"이라고 했다. 타워크레인 대여 업체는 크레인 설치·해체·인상작업의 경우 주로 하도급업체에게 맡긴다. 이 작업을 하는 팀은 일명 '도비팀'으로 불린다. 도비는 일본어 '도비쇼쿠(비계공)'에서 따온 말로 높은 장소에서 일하는 근로자를 뜻한다. 남양주시 크레인 사고 시 사상자는 모두 도비팀이었다. 원래 크레인을 운전했던 백모(34)씨는 "크레인 인상작업에서 사고가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때 크레인 기사가 운전을 하지 않는다"며 "사고 당일 운전도 도비팀 중 한 명이 했다"고 말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도비팀은 130여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비팀으로 20년 동안 일한 김모(48)씨는 최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전국을 돌며 매일 크레인 작업을 하고 있다. 김씨는 "다른 도비팀도 마찬가지"라며 "인건비를 2배로 줄 테니 일요일에도 일해달라는 업체도 꽤 된다"고 했다. 그는 "비가 오고 바람이 심하게 불면 크레인 작업을 중단해야 하지만 한번 일정이 연기되면 다른 현장 업체 피해가 크기 때문에 조금 무리해서 작업할 때도 있다"고 했다. 최근 도비팀 수요가 많다 보니 기술이 없는 근로자가 뽑히거나, 돈을 더 받기 위해 팀원 수를 줄이는 경우도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했다.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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